미확인 생명체의 의미_Beyond_이승현
신철학자들의 담론들과 함께 미확인 생명체, 소위 괴물, 또는 제3의 존재가 가지는 유의미한 지점들이 있다. 서구(西歐) 형이상학 전체에 대한 저항의 시도로서 이분법을 해체시키는 것, 보이드void를 없음이 아닌 있음으로 간주하는 것으로부터의 과잉에 대한 것, 그리고 이 차이가 발생시키는 무한성과 과잉, 그리고 다양성의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속성과 함께 쉽게 읽히는 것으로서의 문제 제기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승현 작가의 미확인생명체들은 이러한 무한 증식하는 이미지 담론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들은 아쉽게도 담론의 인기(?)에 의해 급부상하기도 급 쇠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십여 년 동안 그의 작업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큰 변화 없이 꾸준해 보이는 작가의 삶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작업이 갑자기 변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을 것 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 형식과 내용은 아주 조금씩 서서히 변화하였다. 작업에 대한 작가의 진통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그가 창조한 “crypto-” 시리즈는 작가 이승현의 시그니쳐와도 같 은 것이었다. 작가는 새하얀 지지대를 바탕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에이리언 형상들을 검은 선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려나간다. 작가가 창조하는 제3의 존재가 2차원 벽에 기생하는 특정 생명체, 즉 기존 가치를 전복하는 것으로서 존재했다면, 이제는 이 존재가 일상의 기록으로서 현실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전시장에 나가 작가의 행위-흔적을 새기듯, 작가는 벽에 이 신기한 존재들을 그리고 또 그린다. 또한 작가가 창조한 제3의 존재는 이제 일상생활의 오브제 위에, 큐브 속에, 인간들과 함께 쇼핑몰을 떠돌고 현재-미래 도시이미지 와 함께 공존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 일상에 대한 그의 기록과 의미는 의식적이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펜과 벽은 작가와 함께 물아일체가 되어, 그린다고 하는 일상의 수행적인 부분을 부각한다. 전시 장 벽, 그리고 장지라는 하얀 지지대 위에 자유롭고 검은 먹 선이 만들어내는 생명체는 작가 의 무의식/의식의 흐름을 따라 그 도심 속을 떠다닌다. 장지 위 잉크로 그린 기록시리즈는 수묵의 표현으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큐브 구조에 갇힌 연필 드로잉은 묘사에서부터 뭉개진 표현까지 자유로운 표현력으로 구조 안팎을 넘나든다. 작가는 이미 엄청난 테크닉을 확보하여, 견고하고 분명한 선의 움직임을 통해 무의식적이면서도 다분히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무한 생성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그의 작업은 모순적으로 비개인성을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의 태도와의 비교 속에서 논의해봄직하다.
박정원 미학자도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미확인 생명체가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동일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당시 작가가 가졌던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과정은 무의식만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으며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작용 사이에 진통을 겪는 사회화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의 어떤 인식 체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로서 무의식-의식의 상호 작용에서 진통을 겪는 작가의 사회화’부분이다. 확실히 작가의 관심이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쾌’에서 진화하여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욕망하는 것들로 옮아가고 있다. 이전 작업에서는 그가 창조자가 되어 새로운 것들에게 생명을 주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관계-사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니 작가는 생명체를, 그리고 사회를 작가 자신과 분리하여, 화면 안에서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며, 공존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확실히 무의식이건, 욕망이건 작가 본인을 창조물과 대치시키면서 화면 내에서의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작품의 제목이 그린다는 행위가 작가의 의식체계와 마주하면서 - 또한 큐브라는 구조를 등장시켜서 - 발생하는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것과 같이 미확인 생명체와의 공존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승현 작가의 작은 발걸음, 삶의 기록, 변화하는 의미들, 진화하는 작업을 지켜보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_ 씨알콜렉티브 오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