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개인전 서문
감으면 펼쳐지는, 펼치면 마주하는
백기영 (前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운영부장)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는 생명이 태초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태어나는지, 그 기원을 밝히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의 시원(始原)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형태의 시작과 마주하게 된다. 태초에 생명은 형태와 함께 있었다. 모든 생명은 형태와 기능을 갖추면서 생물로 진화하는데, 생물학자들은 이 과정을 ‘발생(Development)’이라고 부른다. 놀랍게도 발생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현미경이 개발된 17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현미경을 통해 정자와 난자의 미세구조를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발생생물학이 체계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은 외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비존재로부터 구분해 낸다.
이승현은 이브 갤러리에서 있었던 《유형생식》(2004)을 시작으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생겨나는 미지의 생명체를 그려 왔다. 그중 테이크아웃에서 있었던 《미확인 동물원》(2008)이 벽화 형태의 대표적인 드로잉 작업이다. 이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있었던 《예술벽 프로젝트》(2009)는 이상선, 정재호가 함께했던 프로젝트로 컬러플한 색채가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에서 했던 《자치구역 1-13》(2010)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특유의 드로잉 설치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가 그려낸 생명체들은 SF영화에 등장하는 괴물 같기도 하고 곤충이나 식물의 줄기 혹은 오래된 암석이나 기괴한 모양을 가진 산호처럼도 보인다. 1)
이번 전시 제목 《감으면 펼쳐지는(Close to Unfold)》, 《펼쳐지면 마주하는(Unfold to Face)》은 생명 현상, 즉 정신에서 발생하는 생명 현상에 주목해서 기획했다. 전시는 북촌에 있는 페이지룸8과 을지로에 있는 스페이스 카다로그, 그리고 카페 카다로그에서 동시에 열린다. 페이지룸8에서는 공간 드로잉(벽화)을 선보이고 나머지 공간에는 <무명의 순간> 신작 시리즈(2024)가 전시되며 카페 카다로그에는 미공개 미확인 생명체 드로잉 작업이 소개된다. 공간과 연결된 전자 작업이 의식의 내부를 향한 시선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외부를 향한 시선을 담고 있다.
《감으면 펼쳐지는(Close to Unfold)》에서 탐구하는 내적 생명 현상은 눈을 감으면 쉽게 인지 하지 못하는 내부의 요동치는 생명 작용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를 미지의 생명체가 증식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내면의 세계는 끊임없이 펼쳐진다. 《펼쳐지면 마주하는(Unfold to Face)》은 내적 생명 현상을 기반으로 외부를 인식하는 과정을 다룬다. 생명을 유지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자극(특히 이미지)과 마주하게 되는데, 개인이 인식을 통해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세계에 대한 자극을 이미지의 생성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감으면 펼쳐지는》과 《펼치면 마주하는》은 생명의 순환 고리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내면의 생명 현상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기반이 되고, 그 인식은 다시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순환은 생명을 유지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2)
이승현이 페이지룸8 공간에서 벽화를 그리는 과정은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송출되었다. 여기에는 작은 생명체들이 생겨나는 발생의 순간처럼 숨죽이는 고요함 속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작지만 짜임새 있게 구획된 갤러리 공간은 하나의 작은 우주 공간처럼 보였다. 작가는 시종일관 벽면을 응시하다가 마침내 벽면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조심스럽게 하얀 벽 위에 작은 형태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얼룩 같은 형태가 듬성듬성 생겨나다가 일정한 곡선을 따라 벽 위를 꿈틀거리며 움직이거나 이웃한 형태를 감싸고 뒤엉켰다. 어떤 것은 촉수 같은 부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어떤 것은 갑각류의 껍질처럼 단단한 집 속에 웅크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하나씩 부분적으로 생겨났음을 주지할 수 있다. 이들이 증식하고 새로운 변종들로 파생되어 가는 과정은 빅뱅 이후, 생명체가 발생하는 순간을 연상시킨다. ‘푸우!’하고 작은 먼지가 공간 구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기도 했는데, 이 광경은 공간 전체를 신비롭게 하고 만화처럼 변화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개별 생명체의 형태뿐 아니라 공간의 질서에 개입하고 있다. 그림이 어디에서 이어져 그려지게 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생명의 발생이 다른 생명체로 옮겨 가는 것은 작가의 무작위적 개입을 통해서 일어난다.
모든 창조의 순간은 존재가 생명력을 발산하는 순간이다. 화가의 붓끝이 새로운 선을 그려내는 순간이나 악기 연주자가 첫소리를 밀어내는 순간 형태와 함께 생명이 태어난다. 일정한 움직임이 있고 나서 의식이 소멸하는 지점에서 또 다른 형태가 임의로 생겨나기를 반복하고 방향성마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생장점을 통한 증식이 망막에 머물다가 사라진다. 의식 내부를 향한 시선은 공간으로 펼쳐진다. 춤추듯이 유영하는 생명체들을 따라 그려지는 반복되는 노동은 근육 안에 깊이 잠자고 있는 무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의식을 철저하게 배제한 반사신경과 같은 ‘자동기술(automatism)’은 발생하지 않는다. 끝없이 의식과 무의식을 오고 갈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예술노동은 자율을 위한 작가의 강박이다. 계획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그는 작업을 택했고 자신을 제약하는 어떤 것도 없는 상태를 갈구했다. 여기서 음악은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3)
스페이스 카다로그에 걸린 <무명의 순간> 신작 시리즈(2024)는 일상에서 경험한 장면을 그려낸 뒤 그 위에서 발생하는 잔상에서 출발한 드로잉 작업이다.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 위에 드로잉이 그려지기 때문에 드로잉은 이미지의 원형을 교란하고 배경이 된 이미지는 드로잉의 자유분방한 움직임을 제약한다. 일반적인 그리기는 드로잉을 한 뒤 그 위에 색을 칠해 이미지를 완성하지만, 이 작업은 순서가 서로 뒤바뀐다. 이미지에 내재한 또 다른 이미지로서 드로잉은 평면화된 이미지에 관한 인식에 균열을 낸다. 길게 늘어뜨린 나뭇잎이나 곱게 핀 꽃잎 위로 선명한 라인 드로잉이 춤을 춘다. 얼핏 보면, 이 그림들은 만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일상의 장면을 그린 <집으로 가는 길>, <푸른 창 너머>, <빈틈을 찾아서>를 보면 이미지 사이에서 나온 선들은 평면 위로 경쾌하게 움직인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이미지의 외형에서 벗어나 내부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것을 통해 이미지가 품고 있는 변화를 이끄는 힘을 발견하고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미지가 펼쳐지면서 동시에 외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미지와 드로잉은 절충 상태에 도달했다. 여기서 내부와 외부, 규율과 파괴, 균형과 혼돈, 깨끗한 세계와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계 사이의 이원론적인 대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이미지 표면에 맴돌면서 드로잉은 이미지를 교란하고 이미지는 꿈틀거리는 드로잉을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카페 카다로그에는 작가의 이전 미발표 작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앞의 두 공간이 깨끗한 화이트 큐브 공간으로 작가의 작품을 진공상태에서 주목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이 카페 공간은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는 벽과 카페 공간의 진열장을 활용해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이 미확인 생명체들은 자연사 박물관의 생물화석 표본에서 보았을 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생명체들은 유려한 곡선을 타고 가다 작가의 손에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 마치 태고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역사가 된다. 너무 오래되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생명체, 우리의 인식 바깥에 있어서 확인되지 못했던 생명체를 상상해 지금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그려지지만, 탄생하는 순간 그것들은 아주 오래된 미지의 시간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 사이로 ‘푸우!’하고 기체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미확인 생명체가 과거에서 온 것인지 미래에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1) 유민, 『발생생물학 : 생명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진화하는가?』, 보문각, 2012, 21쪽
2) 작가 노트
3) 이승현 작가의 석사학위 논문,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생겨나는 미지의 생명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006, 4쪽